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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의 어두운 이면, 그리고 두 개의 선택지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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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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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슈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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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게임 산업의 성공은 어느 모로 봐도 어마어마했다. ‘성공’이라는 단어조차 이 산업에선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 

 

1970년대까지 게임은 산업적으로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2020년대에 들어 게임 산업은 가장 수익성이 좋은, 그리고 아마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2021년까지 게임은 세계적으로 연간 1,8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전 세계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포트나이트>부터 대대적인 발표와 최고의 짤들로 소셜 미디어를 강타한 닌텐도 다이렉트 실시간 게임 방송 등은 대중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제 게임은 매우 거대한 사업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자라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업의 일원이 되는 꿈을 꿀 수 있다. 

 

1990년대에 미국에 <파 사이드(Far Side)>라는 한 컷 만화가 있었다. 이 만화에서는 두 부모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 푹 빠진 어린 아들을 보면서 말도 안되지만 ‘미래에는 게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구한다는 채용 공고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그 시절에는 닌텐도 실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발상의 터무니없음이 웃음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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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점에서 그 만화를 봤을 때 비현실적인 요소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신문에서 구인 공고를 본다는 설정뿐이다. 이제 전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이 돈을 받고 출근해 게임을 만들어낸다. 캐릭터를 스케치하고, 레벨들을 설계하고, 코드를 짜서 기능을 작동시킨다. 셀 수 없이 많은 게임 유망주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그 세계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

 

어느 날, 게임 발매를 몇 달 앞둔 게임 제작사에 방문했을 때였다. 한 아티스트가 나를 자기 책상으로 부르더니 말했다. "진짜 멋있는 게 있는데 볼래요?" 컴퓨터 주위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목을 길게 빼고, 칙칙한 회색 표면을 따라 유려하고 실감나는 트럭 모델이 굴러가는 장면을 구경했다. 

 

이 아티스트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니 트럭이 폭발했고, 타이어와 쇠 파편들이 매우 느린 슬로우 모션으로 화면 이리저리 날아갔다. 나는 주변에 있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들만큼 깊이 감탄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가 있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상상하고, 그 상상을 컴퓨터 화면 안에 구현해 돈을 받는다.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화려하고 휘황찬란하게 폭발하는 자동차들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산업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E3 기자회견에서 분기별 수익 결산을 할 때 윗사람들이 자랑하지 않는 바로 그런 '이면'이다. 게임 회사들은 매년 돈을 쓸어 담고 있지만, 그 중 근로자들에게 안정적이고 건실한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는 회사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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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실패작을 내거나 현명하지 못한 사업적 결정을 내리면 몇십억 달러 규모의 게임 회사가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하거나 자회사로 거느렸던 개발사를 폐업하기까지 한다. 

 

그 해에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큰 게임 회사는 별다른 실책이 없었더라도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사람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음 회계 분기에 주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직원이 적을수록 대차대조표가 깔끔해진다. 몇 달 뒤에 같은 자리에 사람들을 다시 뽑는다). 현실은 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게임 업계에 몇 년 이상 몸담아온 사람치고 회사에서 잘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작에 참여한 게임이 흥행에 실패했든, 자기밖에 모르는 책임자가 지휘하는 프로젝트를 잘못 만났든 이유는 다양하다. 게임 유통사가 최근 분기의 수익 보고서에 넣을 숫자를 맞춰야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용 절감, 전략 자원 재배치 등 ‘회사에서 나가주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세련되게 표현할 업계 용어는 얼마든지 있다. 마리오 게임에서는 점프가 기본이고 액티비전 게임이라면 의례 전리품 상자가 나오듯, 게임 업계에 있다 보면 대규모 정리해고와 제작사 폐업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2017년에 비영리 단체인 세계 게임 개발자 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는 게임 업계 노동자 천 명을 대상으로, 지난 5년 동안 몇 개 회사에서 일했는지 설문했다. 상근직으로 근무한 사람들의 평균 대답은 2.2개였다(프리랜서는 3.6). 이 업계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을 정도로 업계의 불안정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설문 진행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현재 일하는 회사에 오래 다니리라는 기대가 제한적인 것에서도 이 업계의 빠른 회전율을 알 수 있습니다.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상당수가 직업 이동성을 높게 예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듬해에 ‘GamesIndustry.biz’ 웹사이트 기자 제임스 배첼러(James Batchelor)는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게임 제작사가 문을 닫으면서 사라진 일자리를 모두 세어보았고, 그 결과 자그마치 1,000개가 넘었다. 하지만 이 숫자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수치일 뿐 실제론 훨씬 더 높은 숫자일 것이다. 게임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곧, 다른 업계에선 당연한 안정적인 고용이 ‘원칙이 아닌 예외’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꿈으로만 그칠 줄 알았던 예술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즐거움에 따르는 대가로, 게임 개발자들은 모든 것이 예고도 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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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게임 업계에 종사해온 션 맥러플린(Sean McLaughlin)은 끊임없는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그 많은 해고들을 겪어온 결과, 저는 회사에서 총회를 연다는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트라우마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맥러플린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총회 소식을 들으면 항상 제작사가 폐업한다는 발표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막상 회의에 참석해보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의 근황을 알려주는 것뿐이라도요. 다른 개발자들도 다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책상에 이것저것 늘어놓지 않아요.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의 짐만 가져다두죠. 처음 게임 일을 시작했을 땐 책상에 소품과 수집품들을 잔뜩 늘어놨었죠. 이제는 책상이 썰렁합니다. 사진이랑 책 한두 권 정도가 전부죠. 또 금방 잘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창작 분야는 원래 다 그렇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노동자들이 영화 제작 일정을 따라 여러 계약 건을 왔다갔다하며 일을 하는 반면, 게임 업계는 상근직이라는 환상을 판다. 

 

테이크투(Take-Two)나 EA 같은 대형 게임 유통사들의 구인공고를 보면 임시직이 아닌 커리어가 강조되어 있다. 개발자가 임시직으로 계약하지 않는 이상,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이 완성되면 같은 곳에서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 개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을 위해 사람들을 잡아두는 것은 어찌보면 타당한 일이기도 하다. 

 

게임 개발에 사용하는 툴은 제작사마다 다르고 매우 복잡하다. 시간을 들여서 이 툴을 익혀둔 개발자는 새로 뽑는 사람보다 효율성이 높다. 게다가 몇 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의 궁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이 진리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창작 작업을(또는 과학 실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게임 업계에서 재무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왜 이런 사실에 무심할까?

 

나는 베테랑 게임 디자이너 케이티 치로니스(Katie Chironis)와 함께 이 불안정성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게임 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오큘러스, 라이엇에서 일해온 그녀는 이 업계의 불안정성이 두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그녀 본인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한 적이 한 번 있고, 동료들이 당하는 모습을 두 번 목격했다. 

 

2018년, 그녀는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왔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새로 취업한 회사 말고도 주변에 큰 게임 회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 해고를 당할 것에 대비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게임 개발자인 남편과 함께 비상 계획을 항상 논의하고, 지금의 임시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갈 만한 매력적인 회사들을 정리해두곤한다. 

 

“저희는 집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해고될 수 있는 상황이나 프로젝트가 취소돼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계획을 중심에 둡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적어도 5년은 버티는 게 좋다고들 하죠. 그러나 저희는 한 군데에서 3년 이상 일해본 적이 없어요.”

 

치로니스에게 게임 업계에서 일하면서 꼽은 가장 힘든 일은, 친구를 사귀어도 갑작스럽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4년 어느 날, 치로니스는 모바일 게임 제작사로 출근했다가 바로 짐을 싸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통보 전까지는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줄만 알았다. 

 

“사무실에 불려가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으면 끝입니다.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게 하죠. 제작사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제작사에는 친구들, 아니면 제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뒤에는 기업의 횡포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돈이 콸콸 쏟아지는 업계에서 노동자들을 이렇게 처참하게 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째서 게임 사업은 멋진 아트를 만들어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줄만 알고,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만들 줄은 모르는 것일까?

 

 

나는 첫 책 『피, 땀, 픽셀』에서 게임을 만들기가 힘든 이유를 알아보고자 했다. 여러 개발자에게 질문을 던져서 수많은 답을 얻었다. 그 대답들을 요약하자면, 게임은 예술과 과학 사이에 걸쳐있어 기술 발전과 ‘재미를 찾는’ 도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에, 일정을 칼같이 맞추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개발하려는 게임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Pillars of Eternity)> 같은 오픈월드 롤플레잉이든 <언차티드 4> 같은 일방향 어드벤처 게임이든 상관없이, 흔히 말하듯 ‘영화를 찍는 동시에 카메라를 개발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게임이 뜻하지 않은 시련을 선사하는 현실이 억울한데도 게임을 놓고 싶지 않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계속 밀어붙이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계속 전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거나,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 판은 더 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숨어있던 이동 경로를 새롭게 찾아내서 게임에서 이길 수도 있다.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공략할 수 없는 게임 코드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똑같은 함정에 계속 빠질 수도 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게임을 정말 포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글은 <피, 땀, 리셋 : 게임 개발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도서 내용 일부를 발췌 편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게임, 개발 속 숨겨진 더 많은 이야기들은 하기 링크의 도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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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땀, 리셋 : 게임 개발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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